연표에 해당하는 왕력편(王歷篇)을 이어, 본문에 들어가기에 앞서 「삼국유사」의 실질적인 첫 부분으로서 ‘기이편(紀異篇)’을 두게 된 이유를 밝힌 항목이다. 중국에서 제왕(帝王)이 출현할 때 신이(神異)한 일들이 일어났다는 고사를 거론하고, 우리나라의 경우에도 그런 신이한 사적들이 있었다는 것을 꼭 ‘괴력난신(怪力亂神)’의 일이라 하여 배척할 수는 없다는 인식을 피력하면서, 그런 ‘신이사관(神異史觀)’에 입각하여 ‘이적(異蹟)을 기록[紀異]’한 편인 기이편을 책의 맨 앞에 편성하였음을 독자들에게 알리고 있다.
우리 역사상 최초의 국가인 고조선의 건국과 관련된 내용을 전하는 항목이다. 중국 측 자료로 추정되는 「위서」를 인용하여 단군왕검에 의한 고조선의 건국 사실을 먼저 기술한 후, ‘고기’ 즉 우리 측 자료를 통해 단군신화의 내용을 구체적으로 소개하였고, 말미에는 이른바 ‘기자조선’의 성립에 관한 중국 측 자료를 제시하였다. 이 항목은 현존하는 자료 가운데서는 단군신화를 전하는 가장 오래된 기록이라는 점에서 매우 큰 의미를 지닌다. 앞서 편찬된 「삼국사기」 단계에서 미처 도달하지 못했던 ‘국조 단군’ 인식과 그를 바탕으로 한 ‘민족공동체’ 의식이 「삼국유사」의 사실상 본문 첫머리에 해당하는 이 항목에서 본격적으로...
앞서 나온 「고조선」조에 이어 그 후신으로서의 ‘위만조선(衛滿朝鮮)’의 성립부터 멸망까지의 역사를 기록한 항목이다. 「한서(漢書)」 조선전의 기사를 거의 전재하다시피 하였으나, 특히 후반부는 많이 축약하였다. 원문에는 위만(衛滿)이 ‘위만(魏滿)’으로 적혀 있는데, 일연이 ‘위만(魏滿)’이라고 다르게 표기한 이유는 확실하지 않다. 「한서」 조선전과 그 원전에 해당하는 「사기(史記)」 조선열전에는 ‘위만(衛滿)’도 ‘위만(魏滿)’도 아닌 단지 ‘만(滿)’으로만 나온다.
마한(馬韓)에 관한 기사를 중국과 우리 측의 기록들에서 발췌하여 소개하는 한편, 사이(四夷)와 구이(九夷), 구한(九韓), 예맥(穢貊)에 관련된 내용들도 중국 측과 우리 측 기록에서 찾아서 함께 전해 주는 항목이다. 최치원 이래 마한을 고구려의 전신으로 보는 인식이 그대로 유지되고 있으나, 견훤이 왕건에게 보낸 글에서 백제의 건국지를 ‘금마산(金馬山)’이라고 말한 것을 언급하고, 이를 근거로 ‘마한 즉 백제’설도 일각에서 존재했음을 협주를 통해 알려 주고 있다.
고조선의 옛 땅에 중국 왕조가 설치한 지방 행정 기구에 대해 소개한 항목이다. 「전한서(前漢書)」를 인용한 것으로 되어 있으나, 실제로 현재 전해지는 「한서」에는 관련 기록이 보이지 않아, 인용 과정에서 착오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일연은 한이 소위 ‘위만조선’을 멸망시킨 후 네 개의 군이 설치되었다가, B.C.82년에 해당하는 소제(昭帝) 시원(始元) 5년에 ‘평주도독부’와 ‘동부도위부’가 설치되면서 한사군의 조정이 있었던 것으로 파악한 듯한데, 이 무렵 있었던 낙랑군 동부도위와 남부도위의 설치 사실을 잘못 이해한 것이다.
중국 측 기록을 인용하여, 고조선의 유민들이 나뉘어 70여 소국들을 이룬 사실을 전하는 항목이다. 이전 항목인 ‘2부’에서 나타난 오해가 여기서도 반복하여 드러나는데, 기이편 찬술 시에 전거 확인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음을 시사해 주는 것이다.
고조선이 멸망하고 그 땅에 한(漢)이 설치한 군으로서의 ‘낙랑(樂浪)’에 관한 중국 측 기록을 인용하여 ‘낙랑군=조선=평양성’의 이해 체계를 제시한 항목이다. 아울러 「삼국사기」에 등장하는 ‘낙랑’ 관련 기사들을 간추려 소개하면서, 신라를 거쳐 고려 때까지도 ‘낙랑’이라는 명칭이 우리와 관련하여 사용되었음을 함께 언급하고 있다.
앞선 항목인 「낙랑국」조에 이어, 고조선 멸망 이후 중국이 설치한 지방행정 기구로서의 ‘대방(帶方)’에 관해 소개한 항목이다. 일연은 특이하게도 대방을 ‘북대방’과 ‘남대방’으로 항목을 구분하여 소개하였는데, 이는 뒤에 나올 ‘남대방’이 조위(曹魏) 시기에 설치된 것으로 나옴에 따라 그 이전 시기부터 등장하는 ‘대방’ 관련 기사를 전한(前漢) 대에 먼저 두어졌던 대방군에 관한 것으로 파악하여, 나름대로 합리적인 이해를 추구한 결과로 보인다.
중국 측 사서에 보이는 대방군 설치 기사를 소개한 항목으로, 앞선 항목에서 언급된 ‘대방(북대방)’과 구별하기 위해 항목의 이름을 ‘남대방’이라고 붙였다. 협주에서는 남대방군의 위치를 ‘남원부’로 잘못 파악하고 있는데, 그러다 보니 「삼국지」 위서 오환선비동이전 등에 나오는 대방군 설치 기사에서의 ‘(낙랑군의) 둔유현(屯有縣) 이남 황무지’를 ‘마한의 남쪽 황무지’로 아예 잘못 전하기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