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른본 : 가장 오래된 판본(14세기말)이다. 손보기 교수 개인소장본(제1책 1, 2권만 있음)인데, 현재 연세대박물관에 기증되어 보관중이다.
석남본石南本 : 석남 송석하宋錫夏가 소장했던 것으로 왕력과 제1권만 남은 잔본殘本으로 현재 소장처는 미상이다. 모사한 필사본이 고려대 중앙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다.
송은본松隱本·학산본鶴山本 : 제2책(권3, 4, 5)만 있는데, 권3의 첫 6장까지와 권5의 끝부분 4장이 없는 잔본이다. 송은 이병직 李秉直, 1896 ~ 1973이 소장하던 것을 지금은 손자인 곽영대郭永大가 소장하고 있다. 필사본이 고려대 중앙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다.
범어사본梵魚寺本 : 제2책의 권4, 5만 있는데, 권5의 26·27장이 없는 잔본이다. 범어사 성보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조종업趙鍾業 소장본 : 조종업 소장본으로 권2 1책이다. 도난당한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그 전의 복사본이 영인되어 있다. 권2의 49장 중 제 9장이 결락되어 필사로 보충하였고, 49장 후엽이 결락되었다. 니산본과 비교할 때 결획 부분이 적게 나타나므로 보다 이른 시기의 인출본으로 추정하고 있다.
니산본泥山本 : 권2의 영본零本 1책이다. 이 책은 전체 49장 중 제 17, 18, 19, 20장의 4장의 결락이 있다. 판심 부분의 어미가 고려본에서 간혹 보이는 좁은 면적의 형태로 되어 있고, 피휘가 일관성 있게 지켜지지 못하고 있다. 성암고서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1512년(중종 7) 경주부윤慶州府尹 이계복李繼福이 중간重刊한 5권 2책이다. 현재 권말의 발문跋文 중 8행 ~ 13행 부분에 결락이 있으나 대체적인 중간 경위는 파악이 가능하다. 당시 경주부에는 삼국본사三國本史(삼국사기), 유사遺事의 옛 책판이 있었지만 세월이 흘러 1행 중 겨우 4, 5자만을 판독할 수 있을 정도로 마멸이 심하여 널리 완본을 구하여 성주목사星州牧使 권주權輳의 도움으로 개간했다고 전한다. 당시에 전체 책판 290매 중 약 40매는 구판을 그대로 사용했다. 개각판改刻板에 각자刻字의 모양이 다른 것은 각 고을에 나누어 새겼다는 점, 또 복각覆刻과 필서보각筆書補刻을 겸하는 방법이 사용되었다는 점 등에 기인한다. 이계복이 중간한 책판은 19세기 중반까지 경주부에 보관되었지만 현재는 전하지 않으며, 중종임신본을 인행印行한 몇 종의 간행본이 현재 국내외에 전한다.
5권의 완본인데 이계복의 판간 뒤 32년 이내에 인출한 것이다. 중종때 인물 김연이 구하여 소장하던 것으로 18세기에는 순암順庵 안정복安鼎福이 소장하면서 가필한 것이다. 이마니시 류今西龍가 1916년부터 인사동에서 구입하여 소장하였다가(今西本이라고도 함) 일본 텐리天理대학 도서관에 기증하여 귀중본으로 소장되어 있다. 1926년 순암수택본을 축소, 영인하여 경도제국대학京都帝國大學 문학부총서 제6으로 간행하였고, 고전간행회에서 1932년 순암수택본을 원래의 크기로 영인, 한장본 2책으로 간행하였다. 1964년 일본의 가쿠슈인學習院대학 동양문화연구소東洋文化硏究所에서 고전간행회영인본을 축소, 재영인하기도 하였다.
유점사본楡岾寺本 : 와타나베 아키라渡邊彰가 일본으로 가져간 판본(결락본)이다.
동대본東大本 : 도쿄제국대학東京帝國大學 문학부에서 1904년에 간행하였다.
속장경본續藏經本 : 동대본을 정정하여 속장경 지나찬술부 사전부에 수록하였다.
계명본啓明本 : 최남선崔南善이 교정을 하여 『계명啓明』 제18호(1927)에 수록하였다.
기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