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연 스님은 14세(高宗 6년:1219)에 설악산 진전사의 대웅장로(大雄長老)에게 나아가 머리를 깎고 계를 받았고, 22세(고종 14년:1227)에 승려들의 과거시험인 선종선(禪宗選)의 상상과(上上科)에 합격하였다. 32세(고종 24년:1237)에 포산의 무주암(無住庵)에 머물면서 ‘사람이 사는 세계는 줄어들지 않으며 부처의 세계는 늘어나지 않는다(生界不減 佛界不增)’라는 화두를 깊이 궁구하여 삼계(三界)가 환몽과 같고 대지에는 터럭만큼의 막힘도 없다는 깨달음을 얻었다.
이후 일연 스님은 운문사, 인흥사 등 경상북도의 여러 사찰에 주석하였다. 56세 때(1261)에 스님은 왕명으로 강도(江都 : 강화도)의 선월사에 머물면서 목우화상(牧牛和尙 : 보조국사 知訥)의 법맥을 이어받은 것을 자처하였다.
스님의 활동은 여러 방면에 걸쳤다. 남해 정림사에 머물면서 대장경 판각 사업에 참여하기도 하고, 운해사(雲海寺)에서 대장낙성회(大藏落成會)를 열기도 하였다. 인각사에서는 두 번에 걸쳐 구산문도회(九山門都會)를 개최하였다. 그래서 스님은 78세에 국가로부터 국존(國尊)에 책봉되고 원경충조(圓徑冲照)라는 승호를 받았다.
84세인 1289년 6월에 스님이 입적하자 국가에서는 보각(普覺)이라는 시호를 내리고, 10월에 보각국사정조탑(普覺國師靜照塔)을 세웠다. 입적한 지 6년 뒤인 1295년(고려 충렬왕 21) 8월에 인각사에 보각국사정조탑비(普覺國師靜照塔碑)가 세워졌다. 이처럼 일연 스님은 고려 후기 고려 불교계의 기둥이었다.
2.『삼국유사』
일연 스님이 찬술한『삼국유사』는『삼국사기』와 더불어 우리나라 고대사 연구에 쌍벽을 이루는 사서이다. 편찬된 연대는『삼국사기』보다 140년 정도 늦다.『삼국사기』는 기전체 역사서로서 관찬사서인 반면에『삼국유사』는 사찬사서이다.
『삼국사기』는 유교사관에 입각하여 서술되었고 정치사, 대외관계사, 전쟁과 관련한 사항 등이 중심을 이루고 있다. 반면에『삼국유사』는 기이한 사실, 불교 중심, 신라 중심의 서술이 많다. 또 『삼국유사』는 우리나라 역사가 단군조선에 시작한 것으로 파악하고 고조선 조를 제일 앞에 설정하였고,발해와 가야의 역사도 각각 하나의 항목으로 설정하였다.
『삼국유사』는『삼국사기』처럼 체재나 문장이 정제되지 않았다. 그렇지만 고대 사료들을 그대로 수록하여 사료의 원형을 유지하도록 하면서『삼국사기』를 많이 인용하여 역사서로서의 기반을 가지고 있다.『삼국유사』에는 전설 ·신화가 많이 수록되어 있어 설화문학서라고 일컬을 만하며, 향찰로 표기된 14수의 향가는 한국 고대 문학사의 산 증거가 된다.
일연 스님은 영남의 여러 절에 주석하면서 자료를 모으고 필요하면 해당 지역을 직접 답사하기도 하였다. 이 자료들을 토대로 스님은 군위 인각사에 주석하면서 집필을 완료하였다. 이리하여 불세출의 걸작『삼국유사』가 세상의 빛을 보게 되었다.
『삼국유사』판각은 '전후소장사리(前後所將舍利))'조와 '관동풍악발연수석기(關東楓岳鉢淵籔石記)에 나오는 ‘무극기(無極記)’라는 표기에서 미루어 일연 스님이 돌아가신 이후 제자 무극에 의해 이루어졌거나 아니면 그 이후에 이루어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고려시대의 각본(刻本)은 발견되지 않았다.
지금까지 전해져 오고 있는 『삼국유사』의 판본은 모두 조선시대에 경주부에서 판각한 것이다. 경주부는 오늘날 경상북도 경주시이다. 조선시대에 경주부는 우리나라 인쇄 문화의 중심지였다. 경주부가 이러한 판각 사업을 하지 않았다면『삼국사기』와 『삼국유사』는 영원히 사라졌을지도 모른다.
저자 일연 스님이 출생한 곳과 입적한 곳은 경상북도 경산시와 군위군이었다. 스님이『삼국유사』를 집필한 곳도 경상북도 군위군에 소재한 인각사였다. 스님이 집필한『삼국유사』를 다시 판각한 곳도 경상북도 경주시였다. 스님이 주석한 사찰의 대다수도 경상북도에 위치하였다. 이는 경상북도와 『삼국유사』는 떼어놓으려 해도 떼어놓을 수 없는 관계를 맺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래서『삼국유사』는 경상북도가 품고 있는 보배 중의 보배가 되었다. 경상북도가 다른 어느 광역시도보다도『삼국유사』에 애정을 쏟아 붓고 있는 것도 이러한 역사적 배경이 있기 때문이다.
Ⅱ. 선초본『삼국유사』
1. 종류와 상태
현재 남아 있는『삼국유사』는 모두 조선시대에 판각하여 인출한 것이다. 이 가운데 가장 빠른 것이 태조 3년(1394)에 간행된 것이다. 이를 선초본『삼국유사』라고 한다. 선초본을 누가 어디서 간행하였는지 알 수 없지만 경주에서 간행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현재 선초본은 완질은 전하지 않고 일부씩 흩어져 전해 오고 있다. 이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석남본(石南本)
석남 송석하 소장으로 알려졌으나 현재는 소장처를 모르는 상태이다. 왕력과 권1로 구성되었다. 그러나 왕력은 10, 11장이 결락된 상태이다.
곽영대본(松隱本, 鶴山本)
일제 강점기에 권덕규가 소장하다가 학산 이인영의 소장이 되었고, 다시 송은 이병직의 소장을 거져 현재 곽영대가 소장하고 있다. 이 책은 국보 306호로 지정되어 있다. 이 책은 『삼국유사』권제3∼5권까지의 3권을 1책으로 묶은 것이다. 푸른 비단의 표지 위에는 큰 글자로 ‘三國遺事’라 씌어 있고, 작은 글자로 ‘乙亥 昔珠’ 라고 적혀 있다. 본문은 책 전체를 일일이 배접하고 내용이 손상된 경우는 보사(補寫)되어 있다. 앞부분 6장이 결락된 권제3은 50장, 권제4는 31장, 끝의 4장이 결락된 권제5는 26장으로 모두 합하여 107장이다.
니산본(泥山本:조병순본)
권2가 남아있다. 표지는 후대의 개장(改裝)으로 만(卍)자 문양이며 장정은 5침의 홍사로 매었다. 보물 제419-2호로 지정되어 있다. 현재 보존상태는 양호하다. 앞표지 이면 중앙에 ‘黃馬重陽月買得 泥山南氏家莊(?)’이란 묵서가 있고, 그 옆에는 ‘黃馬二陽月買得 開日臟’이란 부기가 있으며 뒤 표지 이면에는 ‘泥山臟’이란 묵서가 있다. 이로 미루어 권2는 니산 남씨가 소장한 것을 알 수 있다. 니산본은 지금은 성암고서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권2는 본문 49장 가운데 17~20장이 결락되어 있다.
조종업본(趙種業本)
권2에 해당한다. 현재 9장, 10장이 결락되어 있다.
범어사본(梵魚寺本)
권제4와 권제5까지 2권을 1책으로 묶은 것이다. 첫 장 상단의 묵서(墨書) 기록으로 보아 광무(光武) 11년(1907) 오성월(吳腥月)이 입수하여 범어사에 기증하였음을 알 수 있다. 보물 제419-3호로 지정되어 있다. 권4는 31장이 결락되었고, 권5는 전체 30장에서 26~27장이 결락되었다. 이 책에는 조선초 판본 중 유일하게 권4의 이혜동진(二惠同塵)·자장정률(慈藏定律)·원효불기(元曉不羈)·의상전교(義湘傳敎) 등의 편에 구결로 현토(懸吐)가 되어 있다.
연세대 박물관 파른본
고 파른 손보기 교수가 1980년대에 충남 공주에서 구입하여 소장하다가 유족이 연세대에 기증하였다. 현재 연세대 박물관에서 소장하고 있다. 왕력과 권1, 권2가 1책으로 묶여있는데 보물 제1866호로 지정되었다. 이 책은 결락된 곳이 없이 완전하다.
고려대 중앙도서관 필사본
이 책은 고려대 중앙도서관이 소장한 책으로서 석남본의 왕력과 권1, 학산본의 권3, 4, 5를 모사한 필사본이다. 이 필사는 1940년 이후 몇 년 사이에 이루어진 것이다. 이 책은 임서에 가까운 형태로 필사하여 신뢰도를 상당히 높여주지만 기본적으로 필사본이라는 한계성을 갖는다. 선초본 『삼국유사』 판본의 현존 상황은 다음과 같다.
[계명대학교 한문학과 이종문 교수 조사]
현존본/ 권별 |
왕력 |
1권 |
2권 |
3권 |
4권 |
5권 |
소장처 |
파른본(손보기 본) |
있음 |
있음 |
있음 |
|
|
|
연세대 박물관 |
泥山本(조병순 본) |
없음 |
없음 |
있음(17-20장 결락) |
없음 |
없음 |
없음 |
성암고서박물관 |
조종업 본 |
없음 |
없음 |
있음(49장 뒷면 결락) |
없음 |
없음 |
없음 |
소유권 재판 중 |
곽영대본(松隱本, 鶴山本) |
없음 |
없음 |
없음 |
있음(1-6장 결락) |
있음 |
있음(27-30장 결락) |
곽영대 |
범어사 본 |
없음 |
없음 |
없음 |
없음 |
있음 |
있음(26-27장 결락) |
범어사성보박물관 |
石南本(송석하 본)의 필사본 |
있음(제 10장 및 11장 앞면 결락) |
있음 |
없음 |
없음 |
없음 |
없음 |
고려대 도서관 |
곽영대본(송은본, 학산본)의 필사본 |
없음 |
없음 |
없음 |
있음(1-6장결) |
있음 |
있음(27-30장 결락) |
고려대 도서관 |
권별 복원 가능 여부 |
가능 |
가능 |
가능 |
1-6장 결락 |
가능 |
27장 결락 |
|
[계명대학교 한문교육과 이종문 교수 조사]
2. 선초본의 한계점
선초본은 현재로서는 인출 연대가 가장 빠르다. 또 임신본과 비교하면 여러 면에서 차이가 나는 점도 많다. 따라서 선초본은 사료적 가치가 임신본보다 훨씬 높다. 그렇지만 선초본은 다음과 같은 한계점을 가지고 있다.
첫째, 어느 한 본도 완질을 갖추고 있지 않다는 점이다. 파른본은 왕력과 권제1과 권제2는 온전하지만 나머지 본은 없다. 곽영대 소장본은 권3~권5까지만 있는데 일부 결장이 있다. 권4와 권5로 이루어진 범어사본도 권5에 일부 결장이 있다. 따라서 현재 확인된 선초본 각본을 모두 합쳐도 완질을 기대할 수 없다.
둘째, 선초본은 나뉘어져 발견되었기 때문에 소장처가 각각 다르다는 점이다. 개인이 소장하기도 하고 기관이 소장하고 있기도 한다. 이처럼 소장처가 다르므로 일반인들은 물론 연구자들도 실물을 보기 어렵다.
셋째, 파른본의 경우 왕력과 권1, 권2의 글자를 교감하고 원문을 붙인 형태로 책이 출간되었다. 그래서 현재 파른본은 누구나 구해 볼 수 있다. 나머지 선초본은 아직 교감된 책이 만들어지지 않았다. 또 선초본 모두를 합쳐 하나의 책으로 묶어 낸 것도 현재 없다.
넷째, 곽영대본은 비록 앞뒤로 결장이 있지만 권3, 권4, 권5로 이루어져 있는데 선초본 가운데 권3을 포함하고 있는 것은 곽영대본이 유일하다. 그런데 이 곽영대본을 소장하고 있는 소장자가 이 책의 공개를 극구 반대하고 있어 현재 실물을 볼 수 없는 실정이다. 때문에 권3은 교감 자체도 불가능하다.
다섯째, 권3의 내용을 볼 수 있는 것은 고려대 도서관 소장의 곽영대본 필사본이다. 이 필사본은 임서에 가까운 형태로 베낀 것이어서 권3의 대략적인 모습은 추정해 볼 수 있다. 그러나 판각본이 아니라 필사본이라는 것이 한계점라고 하겠다.
Ⅲ. 경상북도의『삼국유사』목판 사업과 선초본『삼국유사』 교감본
1.『삼국유사』목판사업
우리나라는 일찍부터 인쇄문화가 발달하였다. 인쇄문화는 목판인쇄에서부터 시작되었다. 금속활자가 만들어진 이후에도 목판 인쇄는 여전히 성행하였다. 사서(史書)는 물론 경전이나 문집의 인쇄는 목판을 많이 활용하였다. 목판 인쇄는 전통사회에서 지식의 확산과 기록의 보존에 핵심적인 기여를 하였다.
이렇게 만들어진 목판은 이제 우리나라의 자랑스러운 문화재가 되었을 뿐만 아니라 세계인이 아끼고 향유해야 할 세계유산과 세계기록문화유산이 되었다. 합천 해인사에 보존되고 있는 팔만대장경판은 1995년에 “해인사 장경판전(藏經板殿)”의 이름으로 세계유산으로 등재되었고, 2007년에는 “해인사 대장경판(大藏經板) 및 제경판(諸經板)”의 이름으로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되었다. 한국국학진흥원이 소장하고 있는 305개 문중·서원 등에서 기탁받은 목판 718종 64,226장은 “유교책판(儒敎冊板)”의 이름으로 2015년에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되었다.
우리나라 고대 문화의 보고인『삼국유사』도 목판 인쇄물이었다. 그러나 이 책을 찍어낸 목판은 남아있지 않다. 이는 매우 아쉬운 일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이에 경상북도는 없어진 목판을 판각해 두는 것도 의미가 있다고 판단하고『삼국유사』목판 사업을 계획하였다. 이 목판 사업은 선초본 『삼국유사』와 임신본 『삼국유사』 가운데 선본(善本)을 저본(底本)으로 하여 서지적 의미의 원형을 상징하는 목판을 제작하는 사업을 말한다. 이렇게 제작되는 목판은 선초본 목판이나 임신본 목판이 발견될 가망성이 거의 없는 상황에서 우리나라 유일의 『삼국유사』 목판이라는 역사적 의미를 갖는다고 할 수 있다.
『삼국유사』목판을 판각하는 것은 단순히 목판의 복원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다. 이 사업을 계기로 전통기록유산으로서 목판의 중요성과 가치를 부각한다. 현존하는 『삼국유사』 판본들에 대한 보다 정밀한 비교 검토를 통해 오류를 바로 잡고, 『삼국유사』와 관련된 기왕의 연구업적을 기록문화적 관점에서 총괄적으로 정리하여 그 수준을 제고한다. 또 전통 목판 판각 기술, 제지, 제묵, 장정, 인출 등 기술의 현재적 계승과 향후 전승이라는 과제도 수행하게 된다. 나아가 판각 재현 과정을 통해 전통기록문화에 대한 시도민의 인식을 높인다. 따라서 이 사업은 한국사 연구의 기초 사료로서의 『삼국유사』의 역사적 의의를 규명하는 사업이라 할 수 있다.
『삼국유사』 목판 판각 사업은 세 단계로 진행되고 있다. 첫 단계는 임신본을 판각하는 것이다. 이 작업은 서울대학교 규장각본을 모본으로 하여 결획, 탈획 등에 대해 각수들이 판각할 수 있을 정도로 보정한 후 판각을 완료하였다. 둘째 단계는 선초본을 판각하는 것이다. 이 단계 역시 모본에 약간의 보정을 한 후 판각을 완료하였다. 그리고 판형과 판심, 어미(魚尾), 광곽 등은 모본 그대로 하였다. 그 결과 임신본과 선초본 목판은 비록 21세기에 새겨졌지만 거의 원래의 모습을 갖추었다고 할 수 있다.
세 번째 단계는 선초본 『삼국유사』를 교감한 경상북도 교감판을 판각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 사업은 경상북도판으로 이름을 붙일 경우 마치 또 하나의 목판이 있는 것처럼 오해를 줄 소지가 있다는 학계의 반대와 권3을 전혀 이용할 수 없다고 하는 한계 등으로 말미암아 중단되었다. 그 대신 디지털 교감본을 만들기로 하였다. 그 결과로 나오게 된 것이 선초본 『삼국유사』경상북도 디지털 교감본이다.
2. 선초본『삼국유사』 교감본 제작
1) 토대 판본
경상북도 교감본은 선초본을 교감한 것이다. 교감을 하기 위해서는 먼저 모본을 확보해야 한다. 모본 확보를 위해 경상북도와 안동국학진흥원 그리고 『삼국유사』 도감소에서 많은 노력을 하였다. 그 결과 파른본을 소장하고 있는 연세대학교 박물관으로부터 파른본 사용 허가를 얻었다. 그리고 권4와 권5로 이루어진 범어사본도 범어사의 허락을 얻어 역시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모본 확보와 관련하여 큰 문제가 두 가지였다. 하나는 권3의 모본을 현재로서는 전혀 볼 수 없다는 점이다. 권3, 권4, 권5로 이루어진 학산본(송은본, 곽영대본)은 문화재청이 국보로 지정하면서 원본을 촬영을 해두지 않았다. 이에 경상북도에서는 이 책의 사용 허가를 얻기 위해 다방면으로 소장자와 접촉을 하였지만 소장자는 이 책의 공개를 한사코 반대하고 있다. 따라서 현재로서는 권3은 전혀 볼 수 없는 실정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작업을 진행하는 방법은 두 가지 밖에 없다. 하나는 권3을 공백으로 처리하는 것이다. 그러나 선초본을 하나로 묶는 작업을 하면서 권3을 공백으로 하는 것은 선뜻 내키지 않았다. 이에 경상북도와 자문위원회에서는 대안으로 학산본을 필사한 고려대 필사본을 사용하기로 하였다. 고려대 필사본은 비록 필사하였지만 임서에 가까운 것이어서 원본의 모습을 그나마 잘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교감의 결과는 디지털화하는 것이어서 훗날 권3을 사용할 수 있을 때 쉽게 대체해 넣을 수 있다는 점도 고려하였다.
두 번째의 문제는 선초본 가운데 파른본을 제외하고는 나머지 본에는 결락이 있다는 점이다. 권3은 앞부분에 권5는 뒷부분에 결장이 있다. 결장 부분은 새로운 선초본이 출현하지 않는 이상 다른 방법이 없으므로 임신본인 규장각본으로 보완하기로 하였다.
선초본 경상북도 교감본을 만드는 작업은 파른본을 기꺼이 사용하도록 허락해준 연세대 박물관과 범어사본을 허락해준 범어사, 그리고 곽영대본 필사본의 사용을 허락해준 고려대학교 도서관의 도움 때문에 가능하였다. 이 자리를 빌려 도움을 주신 기관들에 감사의 말씀을 드리는 바이다.
2) 교감의 기본 방향
경상북도 교감본을 만들기 위해서는 먼저 선초본에 대한 교감 작업이 이루어져야 한다. 선초본에 대한 교감 작업 내용은 다음과 같이 나누어 볼 수 있다.
첫째, 선초본의 내용과 글자들을 바로 잡는 교감 작업이다. 오자, 탈자 등은 임신본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선초본에 있다. 그래서 교감이 필요한 것이다. 파른본의 경우 연세대학교 박물관에서 축소영인판을 내면서 이 작업을 수행하였다. 그러나 나머지 3, 4, 5권에 대한 교감 작업은 아직 이루어지 않은 형편이다. 이번 경상북도 교감본에서는 선초본에 대한 교감 작업을 모두 하게 된다. 이는 선초본 모두에 대한 최초의 교감 작업이라 할 수 있다.
둘째, 『삼국유사』에 인용된 원 자료의 내용과 『삼국유사』 본문을 대조하여 같고 다름을 파악하는 작업이다. 『삼국유사』에는 많은 인용 서목들이 나온다. 이를 권별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삼국유사』에 인용된 사서와 자료 목록
권1
魏書(魏志), 經云, 古記, 唐裵矩傳, 通典, 漢書, 前漢朝鮮傳, 師古曰, 李曰, 臣讚曰, 甄萱上大相書, 崔致遠(致遠云), 周禮, 三國史, 淮南子注, 論語正義, 海東安弘記, 前漢書, 朝鮮傳, 後漢書, 新唐書注云, 國史(三國史), 百濟溫祚之言, 新羅古記, 指掌圖(東坡指掌圖), 賈躭郡國志, (三國史記)地理志, 羅人云, 東明記, 後魏書, 雲門寺古傳諸寺納田記, 本朝史略, 國史高麗本記, 檀君記, 新舊唐書, (三國史記)本紀(本記), 唐書(新唐書, 唐史), (三國史記)史論,
日本帝記, 良志師傳, 別記, 一本, 一云, 鄕記, 新羅別記, 百濟古記, 新羅古傳,
권2
唐書高記, 鄕古記, 國史(三國史), 寺中記, 日本帝紀, 寺記, 古本, 王代宗錄, 誥曰, (三國史記)史論, 三國史記注, 量田帳籍, 百濟地理志, 後漢書, 通典, 古本, 古記, 寄書于太祖, 太祖答曰, 李磾家記, 制曰
권3
高麗本記, 僧傳, 百濟本記, 僧傳, 新羅本記, 高得相詠史詩, 自注, 諸傳記, 殊異, 高僧傳, 我道本碑(本碑), 古記, 梁唐二僧傳, 三國本史, 元魏釋曇始傳, 鄕傳, 金用行撰阿道碑, 傳云, 國史與鄕傳, 僧傳與諸說, 冊府元龜, 國史, 古記, 高麗本記, 本傳, 唐書, 高麗古記, 神誌秘詞序, 傳云, 俗云, 跋云, 本傳. 僧傳, 玉龍集. 慈藏傳. 諸家前紀, 阿含經, 歷代歌, 大一曆法, 纂古圖, 三寶感通錄, 古傳, 本國本記, 本草, 本傳, 牒文, 別傳, 寺中記,別本, 別記, 寺中寺記, 東都成立記, 寺中古記, 良志法師傳, 新羅古傳, 一本, 無衣子留詩, 彭祖逖留詩, 跋云, 義湘傳. 浮石本碑, 白月山兩聖成道記, 鄕傳, 記云, 古本, 地理志, 寶林狀奏, 觀佛三昧經, 高僧傳, 西域傳, 西域記, 山中古傳, 唐僧傳. 三國本史, 別傳國史, 留記後來山中所行輔益邦家之事云, 寺中所傳古記, 彌勒尊像火光後記, 彌陀佛火光後記, 討論三韓集, 俗傳, 相傳, 信書, 任道大監柱帖, 古傳, 懸板
권4
唐續高僧傳, 古本殊異傳. 圓光法師傳, 三國史, 三國史列傳, 唐傳, 淸道郡司籍, 淸道郡都田帳傳, 長生標塔公文一道, 新羅異傳, 海東僧傳, 求法高僧傳, 國史, 行狀. 鄕傳, 華嚴經, 崔侯本傳. 曉師行狀, 大文類, 唐僧傳, 舍利弗問經, 關東楓嶽鉢淵藪石記, 別幅, 湘傳, 占察經, 宋傳, 王代宗錄, 白居易嘗窮之未能乃曰
권5
或本 金光寺本記, 僧傳, 文武王傳, 本寺記, 國史, 鄕傳, 僧傳, 鄕中古傳, 本傳, 曉師本傳, 海東僧傳, 華嚴經, 三郞寺碑, 普賢章經, 智論, 靈鷲寺記, 唐僧傳, 三和尙傳, 高僧傳, 前三國史, 古鄕傳, 寺中有記, 古今
인용된 사서와 자료들을 보면 매우 다양하다. 자료들은 국내 자료와 중국 자료, 일본 자료로 구분된다. 국내 자료는『삼국사기』』와 고기, 고본 등으로 표현된 사서류와 사중기(寺中記) 등으로 표현된 사찰 관련 자료, 승전 등 승려들의 행적과 관련한 자료, 금석문 자료, 공문서 자료 등등이다. 중국 측 자료는 『후한서』를 비롯한 사서와 『송고승전』을 비롯한 승려들의 전기가 대부분이다. 일본 측 자료는 『일본제기』가 인용되고 있다. 불교 관련 자료로는 『화엄경』을 비롯한 불교 경전들이 다수 인용되어 있다.
『삼국유사』에 인용된 원 자료의 내용은 그 사건과 관련한 기록에서는 가장 우선해야 하는 자료이다. 일연 스님이 이러한 자료들을 인용하는 방법은 매우 다양하였다. 원문을 그대로 인용한 경우도 있지만 원문을 축약하여 인용한 경우, 같은 뜻을 갖는 다른 글자로 대체한 경우, 중간 중간에 다른 자료를 끼어 넣은 경우, 내용의 상당 부분을 빼버린 경우 등 다양한 방법으로 인용하였다. 그리고 인용 과정에서 고유명사에 착오가 있기도 하고 내용을 축약하는 과정에서 변개가 일어나기도 하였다.
인용 자료와 『삼국유사』 원문과의 대조 작업은 『삼국유사』의 원문과 인용된 원전의 내용을 일일이 대조하여 같고 다름을 파악하여 정리하는 것이다. 이러한 교감 작업은 지금까지는 없었다. 경상북도 교감본 교감 작업에서 처음으로 하는 것이다.
셋째는 세주로 들어가야 할 내용이 본문으로 되어 있는 경우 이를 세주로 정리하는 것이다. 공교롭게도 세주로 들어가야 할 부분이 본문으로 되어 있는 경우 앞이나 뒤에 주(注)자가 붙어 있는 경우가 종종 보인다.
넷째 왕력의 경우 빠진 왕이 있기도 하고 사건의 내용이 다른 나라 부분에 들어간 경우도 있다. 또 각 왕대에 일어난 일의 연대와 중국의 해당 연호의 연대와 일치하지 않는 경우도 있다. 이를 바로 수정하여 정리하는 것이다. 왕력에서 사건이 일어난 연대와 중국 연호의 연대를 확인한 것은 이번 교감 작업에서 처음으로 하는 것이다.
이러한 네 가지 작업을 마친 후 교감해야 할 부분들을 하나의 표로 만들어 다시 원문과 일일이 대조 작업을 한 후 교감본을 완성하기로 하였다.
3. 경상북도 교감본의 역사적 의의
경북판 교감본은 종래의 교감본과는 몇 가지 점에서 특징을 갖고 있다. 첫째, 본 교감본은 선초본을 저본으로 한 최초의 교감본이다. 물론 파른본에 대한 교감작업은 행해졌지만 나머지 본에 대한 교감은 아직 이루어지지 않았다. 이번 작업을 통해 선초본 모두에 대한 교감 작업이 이루어진 것이다.
둘째, 선초본은 완질의 형태로 남아있지 않고 몇 개로 나뉘어져 발견되었기 때문에 소장처도 여러 곳이다. 따라서 지금까지는 각 본을 하나로 합치지 못하였다. 경상북도 교감본은 소장자의 허락을 받아 완질에 가까운 선초본을 교감해 낸 것이다.
셋째, 종래의 교감은 오자, 탈자, 이체자 등에 대한 교감이었다. 그러나 경상북도 교감본은 이것에 더하여 『삼국유사』에 인용된 원전 내용과『삼국유사』 본문을 대조하여 같고 다름을 확인한 후 교감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인명, 지명, 관명 등 고유명사가 『삼국유사』 본문에 잘못 기록되었을 경우 이를 바로 잡는 것이다. 이 작업은 『삼국유사』 연구에서 기초적인 것이지만 이에 대한 작업은 이제까지 이루어지 않았다. 우리 학계가 제대로 눈을 돌리지 못하였던 것이다.
넷째, 왕력에 대한 교감은 오자, 탈자, 이체자 이외에 사건이 일어난 연대와 중국 연호의 연대도 대교하는 작업을 하였다. 이 작업 역시 본 교감본에서 처음으로 이루어진 것이다.
경상북도 교감본은 연구자들은『삼국유사』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시민들에게도 많은 도움을 줄 것으로 생각한다. 이 경상북도 교감본이 더욱 빛을 발하기 위해 앞으로 해야 할 일의 하나는 선초본에 대한 역주 작업이다. 임신본에 대한 역주 작업은 많아 나왔지만 선초본에 대한 역주 작업은 전혀 없었다. 교감본이 최초인 것처럼 역주(譯註) 작업도 우리나라에서는 최초가 된다. 따라서 경상북도와 군위군에서는 힘들게 만든 경상북도 교감본이 생명력을 가질 수 있도록 조속히 예산을 확보하여 역주 작업을 추진해야 할 것이다.
Ⅳ. 교감 작업
1. 연구진 구성
『삼국유사』목판사업과 선초본 『삼국유사』경상북도 교감본 아카이브 구축 사업은 한국국학진흥원에서 주관하였다. 아카이브 구축 사업의 일환으로 진행되는 디지털화 사업은 (주)나라지식정보에서 수행하였다.
교감 작업을 진행하기 위해 한국국학진흥원은 경북대학교 영남문화연구원에 연구 용역을 의뢰하였다. 영남문화연구원에서는 경북대학교 주보돈 교수를 책임연구원으로 하여 연구진을 구성하였다. 연구진 구성은 다음과 같다.
책임연구원
주보돈 교수 : 경북대학교 사학과
연구원
김복순 교수 : 동국대학교 국사학과
노중국 명예교수 : 계명대학교 사학과
이종문 교수 : 계명대학교 한문교육과
채상식 교수 : 부산대학교 사학과
연구보조원
최홍조 선생 : 경북대학교 영남문화연구원
연구진은 때로는 매주 모여 교감의 기초인 일러두기의 작성, 판형과 관련한 사상, 수정 보완하는 글자의 처리 방법 등등을 논의하였다. 이 과정에서 삼국유사도감소의 윤용섭 본부장과 김용만 도도감(都都監)도 토론에 참여하였다.
2. 일러두기와 작업 원칙
교감이 제대로 되기 위해서는 먼저 일러두기와 작업 원칙이 만들어져야 한다. 일러두기와 작업 원칙 작성은 연구원 각자가 자기 많은 부분을 일차적으로 교감해 보면서 그 과정에서 원칙으로 세워야 할 사항들을 뽑은 후 이를 공동으로 검토하면서 확정해 나갔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 정리한 일러두기와 작업 원칙은 별도로 첨부한다.
3. 교감 과정
1) 1차 교감과 확인
교감 작업은 제한된 일정 때문에 효율적으로 진행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그 방법으로 각 연구원은 일정한 분량을 분담하여 각자 교감을 진행한 후 그 결과를 전체 모임에서 하나하나를 검토하면서 확정해 나갔다. 이 과정에서 개별 교감에서 빠진 부분은 보완하였다. 연구원 각자가 분담한 내용은 다음과 같다.
주보돈(권1, 왕력 1,2,3장), 노중국(권2, 왕력 7,8,9장), 김복순(권3, 왕력 10,11,12장), 채상식(권4, 왕력 4.5.6장), 이종문(권5, 왕력 13,14,15장)
1차 교감 작업에서 미진한 부분을 보완하기 위해 교감에 대한 확인 작업을 진행하였다. 확인 작업도 다음과 같이 분담하여 진행하였다. 이 확인 작업을 맡아 준 분과 분담 내용은 다음과 같다.
권1(조이옥 박사:이화여대), 권2(윤진석 박사:계명대), 권3(신선혜 박사:고려대), 권4(김현라 박사:부산대), 권5(남춘우 연구교수:부산대), 왕력(이상훈 박사:경북대)
2) 2차 교감과 의견 수렴
1차 교감과 확인을 거친 교감본은 나라지식정보에서 디지털화하는 작업을 하였다. 교감한 것이 제대로 디지털화되었는지의 여부를 확인팀이 일차 점검하고 연구원팀이 2차로 점검하였다. 이렇게 하여 2차 교감이 이루어졌다.
점검을 마친 디지털본이 가능하면 오류를 범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 의견 수렴 과정을 거치기로 하였다. 의견수렴 과정은 두 방향으로 동시에 진행하기로 하였다. 하나는 학계 전문가의 의견을 수렴하는 것이다. 이 의견수렴회는 2017년 7월 28일 경북대학교에서 개최하기로 하였다. 다른 하나는 2차 교감본을 온라인에 공개하여『삼국유사』에 관심이 있는 시민들의 의견을 수렴하는 것이다. 공개 기간은 2017년 7월 17일부터 8월 16일까지 한 달 동안이다. 전문가 의견수렴회와 시민 의견 수렴 과정에서 제시된 의견은 연구팀이 검토한 후 교감 본에 반영될 것이다.
한편 선초본『삼국유사』와 임신본 『삼국유사』의 여러 판본과의 대교 작업은 경북대학교 남권희 교수팀이 하였다. 그 결과물은 다음 사업으로 진행할 예정인 역주본 『삼국유사』에 반영하기로 하였다.
4. 교감본 아카이브 구축
선초본 삼국유사 경상북도 교감본 아카이브 구축은 학계 관련 전문가들은 물론 일반 대중들의 관련 자료들에 대한 접근성을 제고한다는 목표로 2017년 1월에 구체적인 계획을 마련하였다. 그리고 2월말에 이 업무를 수행할 업체로 아카이브 구축과 관련하여 많은 경험을 지닌 전문업체인 나라지식정보를 선정하였다.
나라지식정보는 기본적인 웹서비스 개발을 비롯하여 원문, 목판과 인출본 이미지, 삼국유사 관련 학술자료 등에 대한 데이터 구축은 물론 VR 제작까지를 전담하기로 하였다. 이 가운데 가장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교감본 아카이브 구축이다. 아카이부 구축 작업은 아래와 같이 진행되었으며, 다음과 같은 사용상의 특징을 갖추고 있다.
1) 작업 내용
- 교감된 글자의 물리적 위치정보(판, 판면, 페이지, 행, 열, 이미지 위치 값 등)를 기록하였다.
- 교감된 글자로 교감사전을 구축하고, 판본별 원문으로 이동이 가능하도록 구현하였다.
- 교감 글자에 주석 표시를 하였다.(주석 내용 마우스 위치 시 팝업창으로 표시).
- 원전의 원문과 대교가 가능하도록 하였다.(원전 명칭에 마우스 위치 시 팝업창에 원문 제시).
- 이체자 등은 원문과 인출본에서 해당 글자를 이미지로 저장하여 제공하였다.
- 판본별로 원문, 인출본, 목판 이미지를 상호 연계할 수 있는 기능을 구현하였다.
- 고유명사에 대한 주석 추가 및 서비스가 가능하도록 설계에 반영하였다.
- 학술자료관을 통해 기존의 삼국유사 관련 학술자료들을 목록으로 정리하였다.
- 목판의 2D 및 3D 이미지를 구현하여 실물에 가깝도록 재현하였다.
2) 사용상 특징
- 교감본, 선초본, 임신본 등 각 판본에 대한 비교가 가능하다.
- 인용문의 경우, 팝업창을 통해 원전의 원문과 대교가 가능하다.
- 목판의 2D 및 3D 이미지를 구현하여 입체적인 체험이 가능하다.
- 일반인들이 WEB과 HMD를 통해 자료에 보다 쉽게 접근할 수 있다.
- 삼국유사 목판사업의 과정과 결과물에 대한 정보를 공유할 수 있다.
- 목판 복각 과정을 통해 전통 목판인쇄문화에 대한 이해를 제고할 수 있다.
- 기존의 삼국유사 목판사업 홈페이지를 연계하여 살펴볼 수 있다.
- 지속적인 자료 추가와 수정이 가능한 시스템으로 개발되었다.